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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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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10. 14:31

온전한 가정에서 살아왔다는 감사함.

 

나의 엄마를 엄마라고 부를 수 있고, 나의 아빠를 아빠라고 부를 수 있다는 감사함.

그리고 내가 엄마와 아빠의 사랑으로 태어난 존재라는 감사함.

힘든상황 속에서도 서로의 사랑으로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은 부모님.

많이 늙으셨지만 큰 병 없이 건강한 부모님의 존재에 대한 감사함.

 

매 순간 부모님은 최선의 선택으로 나를 키워 오셨고, 살아오셨다. 최선의 선택이 항상 좋은 결과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나는 내 선택과 내 느낌을 믿는다.

 

분명 그땐 행복했었고, 사랑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행복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것 뿐이다.

사랑의 추억이 떠오를떄마다 내 발끝에 부딪힐때마다. 마음이 쓰라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삶의 중심은 나로 시작한다. 내가 행복한 것을 지키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가는 것뿐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떄 행복하다.

그런 내 행복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지켜갈 것이며, 내 행복을 방해하는 사람은..

내 행복을 무너뜨리고 나의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사람에게서는 필사적으로 피하고 도망칠 것이다.

그 애도 모든 순간 내게 거짓이였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린 꺠진 그릇처럼 서로의 깨진 부분이 서로를 아프게 했던 것 같다. 너무 서로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앞으로 하게 될 다른 연애에서는 아니다 느꼈을땐, 헤어져야겠다고 고민끝에 결론을 내렸을땐, 헤어지는게 백번 천번 생각해도 맞다는 것을 알았다. 내 느낌과 나를 믿자. 내가 쎼하면 쎼한 것이다. 내가 믿고 기대해야 하는 존재는 타인이 아니라 내 자신이다.

 

 

posted by 파란수선화
2020. 10. 28. 13:03 나와 타인의 이야기

나는 눈치가 빠르다. 눈치를 보는게 너무 익숙해 삶의 일부분이 됐다.

 

연애를 하는 중에도 눈치를 본다.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사람눈엔 머리엔 내가 우선인지 다른 것들이 우선인지.

눈치 빠르다, 남의 마음을 잘 읽는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보고 싶지 않은 연준이 마음을 연준이 행동을 통해 알게될 때마다 너무 아프다.  

 

연준이라는 친구를 알게되고, 설레고, 사랑하게됐었다.

 

연준이와의 연애가 따뜻하고, 포근했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나를 사랑했던 그애의 행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어 가는 것들을 봤을때

마음의 결의 한겹씩 벗겨져 나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게 익숙해져 가는 것이라고 하고, 오랜 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당연한 것이라고해도

누군가와 한번도 1년이상이라는 긴 연애를 해보지 못한 나로써는 그렇게 한겹 한겹 벗겨져 나가는 것들이

내 가슴속을 파고들어가서 너무 쓰라렸고 아팠다. 처음에는 아프다. 앞으로 이렇게 해줘라. 말도 해봤는데

그게 점점 잘 안된다. 근데 내가 연준이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되서 점점 더 아파왔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연준이는 하나의 세상이 되어갔고, 내 삶의 안식처이자 내가 가장 머물고 싶은 하나의 방이되어가는데

연준이에게는 가족방, 친구방, 축구방, 그리고 내방 이렇게 4개의 방이 존재했다.

 

그런데 그 방들중에 내가 가장 우선순위가 낮은 느낌이 들게 하는 연준이의 행동은 특히나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심장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내가 가장 힘들어서 무너지던 날 연준이는 한번도 내 곁을 지켜주지 않았다.

처음으로 있어줬으면 했던 날도 치킨 기프티콘을 내게 보내주고 여동생과 치킨을 시켜먹었다

내게로 달려와 나와 함께 치킨을 먹어줬으면 어땠을까, 그쯤 연준이는 내 마음이 부담스럽라는 말도 했었다.

그 뒤로 나는 연준이에게 힘들떄 기대는게 너무 어렵고 무서워졌다. 그러다 또 힘든 날에 부딪혀 두번째로 무너진날엔 울고 힘들어하는 내가 계속 힘들다 이렇게 해줘라 나는 이렇게 슬프다 하는 나를 두고 연준이는 계속 졸다가 화내다가 상처주는 말들로 내 가슴에 비수를 꽂다가 나를 홀로 남겨두고 축구를 하러 갔다

 

연준이는 말로는 변하지 않았다. 아직도 사랑한다. 항상 내게 말하지만 연준이가 내게 하는 행동은 그렇게 말해주지 않는다. 연준이가 취직하고 나서부터 들기 시작한 이 마음이 연준이네서 밥을 먹고 더 강력해져서 그리고 내 마음이 폭발해서 우리에게 큰 시련이 왔었고 그게 계속 이어지는중이다. 서로의 마음이 갈려지는 중인 것 같다.

 

그 큰 시련이후에 나는 잠을 잘 못잔다. 아니 잠을 잘 못자는 날이 많아졌다. 누군가와의 결혼이든 평범한 가족을 만드는걸 꿈꿔본 적이 없었다. 지금 내가 속한 가족들을 지켜주고 싶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였으니까. 그러다가 내 삶에 내가 중심이 되고 싶게 만드는 연준이를 만나 내 몫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졌고,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어졌다. 그게 새로운 행복이고 진짜 행복이 되어줄 거라고 믿었는데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껴졌다. 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더 불행해지는 것이 보인다. 연준이가 취준생때는 그냥 연준이가 너무 좋았고 연준이 존재만으로 날 너무 따뜻하게 해줬는데 나는 그 따뜻하고 세심함이 좋아서 사랑하게 된 건데 그게 남아있지 않고 그 모습은 원래의 연준이가 아니라는 것이 점점 강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연애를 그만하고 싶다. 처음 연준이네서 밥을 먹고 온 날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이 연애를 끝내고 싶었는데, 내 감정이 내 마지막 기대가 연준이를 변호하고 나를 비난하면서 이 연애를 이어온 것 같다.

 

사랑을 해서 아프기도 하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게 많아져서 많은 것을 주게 되고, 그렇게 내 마음도 주게 됐는데. 그걸로 끝나면 되는건데 또 그 만큼 받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그 마음이, 그 기대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같다. 그치만 예전의 연준이는 내가 조금만 기대해도 그 이상을 해줬었는데 이젠 조금만 기대한 만큼만 해달라고 해도 억지로 해주는 느낌과 가끔을 내가 말한것도 까먹기 일쑤다.

 

연준이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내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다. 또 이런 내 마음이 과하다고 한다. 이런 내 마음이 커지게 한것도 연준이를 사랑하게 만든것도 연준인데. 처음 연준이를 만났을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게 해주세요라고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요즘엔 아무리 사랑의 콩깍지가 씐 나라도 아니다. 잘못됐다. 라고 속으로 외치게 된다. 여자친구에게 9만원짜리 목도리 사주려다가 친구들 빚진 형편이라 만원 짜리를 사준 남자친구다. 힘든 형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미안하고 고맙고 속상했는데. 그 다음날 연준이는 여동생 실직했다고 20만원 생일 선물로 준다고 말했다. 그래 그럴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연준이는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셨고 5만원씩 냈다고 했다. 그리고 분명 택시도 탈텐데... 화가 폭발해버렸다. 황연준이 친구들 빚 때문에 아끼고 있는건 내가 유일했다. 내가 연준이를 이렇게 만든걸까. 내가 너무 잘해줘서 내가 너무 내 마음을 다 줬어서. 내가 괜찮다해버려서 일까. 이렇게 된게 나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사랑했던 연준이를 내가 착각했던 걸까 지금의 연준이가 진짜 연준이인걸까.

 

내가 사랑했던 연준이는 더이상 남아있지 않는다.

 

내가 사랑했던 연준이는 나를 사랑해주던 연준이가 사라졌다.

우리 둘 사이 믿음도 신뢰도 약속도 흐려졌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다.

푹자고 싶고, 그만 힘들고 싶고, 그만 아프고 싶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서로 어렵고 힘들어도 서로 너무 사랑하는 사람만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사람만 내 곁에 있다면

이겨낼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연준이를 믿고 의지할수가 없어졌다. 그동안 연준이의 일관되지 않은 행동과 내게 화내고 변명하는 모습들이 나를 나중으로 미뤄버리는 연준이의 모습들이 말이다.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그 사람의 습관이 된다. 그리고 그 습관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연준이는 너무 나와 다르며,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인격을 가졌다. 이젠 정말 아니다. 아닌건 아닌거다.

 

 

posted by 파란수선화
2019. 9. 5. 15:34 카테고리 없음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은 먹구름이 잔뜩 껴있고, 아직 비는 내리지 않지만 습하고 답답한 날씨다. 지금의 내 마음처럼 말이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을떄 즐겁지가 않다면 그 자리를 비하는게 쉬워졌다.

 

남자친구를 사귈때도 그 남자를 만날떄 즐겁고 행복하고, 혼자보다 둘이라 의지가 되고 좋다면 만나고,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과 끝을 정해놓고 만나거나 그 사람과 내가 함께라서 힘들기만 하다면 헤어져왔다.

 

세상에 누군가가 인생을 잘 사는 법이라고 답을 내놓을 수가 있단말인가.

모두가 처음이다. 학생으로 살아가는 것도, 사회인이 되어가는 것도,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처음 하는 것도.

서툴고 또 불안하고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척 할뿐이다.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며 서로가 서로의 행복의 양을 비교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 짓일까

누군가에게 오롯한 내 본연의 모습을 다 비출 수 있다는 것은 아니, 그럴 수 있는 나 아닌 타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니, 그런 타인이 내 삶을 통틀어 정말 존재하는 걸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고교시절 우린 참 잘 맞았고, 우리의 삶의 일부분을 차지했고, 또 그만큼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나눴다.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생겼다. 나와 그들이라면 무서울게 없던 시절이 있었다. 야자를 도망나와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노래방을 향해갈때도,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부를때도 우리는 함께라서 무서운 것이 없었다. 학교앞에서 먹는 즉석떡볶이와 토스트만 있다면 내 삶이 꽃 같아보였다.

 

대학시절 우린 참 맞았다. 남자문제가 살짝 낄때는 조금씩 삐그덕 거린 적도 있지만, 그래도 항상 서로의 안부를 묻고 위로를 하고 질투하고, 시기하기도했다. 나의 아픔에 진심으로 울어주기도 했다. 취업하고, 사회인이 되면 당시엔 인생에 대한 나의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끝날 줄 알았다.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그렇게 마음을 쓰고 애쓰지 않아도 쉽게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왔다. 첫 사랑과 첫 이별이 참 호되게 나를 아프게했지만, 그 뒤의 사랑도 나름 달달했고, 이별은 항상 똑같이 아팠었다. 그리고 나는 사회인이 되었다.

 

사회인이 된 나는

 

 

posted by 파란수선화
2019. 8. 7. 18:00 카테고리 없음

원주에 온지 6개월 그리고 6일이 됐다.

그동안 원주에서의 생활을 둘러보고, 원주에 오기 전을 되돌아봤다.ㅋㅋ

처음 원주에 가게 되는 것이 결정됐을 때, 홀로 처음 지역으로 가서 살아보는 것이라 두렵고 속상하고 힘들었던 것 같다.

그 힘든 시기에 많은 분들과 송별회를 하며 기운을 낼 수 있었지만 내게 큰 울림을 줬던 것은 같이 일했던 동생의 메시지였다. 내가 누군가에게 큰 버팀목같은 존재였다는 것이 그 때는 몰랐어서 신기했고 나를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봐준 동생에게 부끄럽기도하면서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좀 더 따뜻하고 좋은사람이 되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 동생이 힘들때 내가 건냈던 쪽지가 그 동생에게 큰 울림을 줬듯이 나 또한 그 동생의 메시지로 큰 울림을 받고, 또 신기한 마법이 일어났다. '행복한 순간들이 자주 생기셨음 해요'라던 그 친구의 따뜻한 위로와 말이 진짜로 원주에서 내가 생활하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원주에 와서 어딘가에 있는 것보다 누구와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소소한 일상들에 행복해하며 지낼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원주에서의 행복한 순간들이 쌓여오고 있다. 그래서 지난 6개월 그리고 6일의 시간들이 참 감사한 것 같다. 사업을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부유하게도 살아보고 또 가난하게도 살아보고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이었다. 사업은 돈에 쫓기며 운전하는 것과 같다. 안전하게 운전하는 녹색운전자여도 사고는 예기치않게 찾아오고, 원하는 대로 목적지 까지 제대로 갈지는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20살때 내 꿈은 슬프게도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직장인'이었다. 달리기 위해 사는 것같은 경주마처럼 그 시절에만 누릴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사람들을 많이 놓치며 살아온 것 같다. 현재(Present)는 선물처럼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도 사람들은 말한다. 서른이 된 내게 지금은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면 조금은 서글프긴하지만 빛나지 못할 법은 또 없다. 뉴욕&보스턴 여행까지 14일이 남았다. 헤헤헤  

 

posted by 파란수선화
2019. 7. 23. 17:28

12일 나는 PD필기 시험을 봤고, 필기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18일에 면접을 봤다. 그리고 어제 최종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18일 면접 당일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봤었다.

이런저런 예상 질문에 대한 대답들을 밤새 달달 외웠는데, 정작 면접장에서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질문들을 내게 물었고, 나는 그런 사소한 나에 대한 질문과 물음에 횡설수설 했던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대답들을 어떻게든 엮어서 잘봤다. 못봤다 할 것 없이 이러저러한 면접이 끝났다.

마지막에 면접관이 내게 "좋은 결과 기대할게요", "시간이 참 빨리 가네요" 라는 말을 해 그리 나쁘지 않은 면접이었나? 싶은 마음을 갖게 됐다. 그리고 면접을 마치고 나왔을떄, 면접을 보는 사람이 굉장히 소수라는 것을 알았다.

3명의 피디를 뽑는 시험이었는데, 면접은 5명만 본다고했다. 내가 다섯명중 3명 안에는 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자만심이 들었다. 그리고 어제 그 오만한 자만심이 와르르 무너졌다.

 

3명을 뽑기로 되어있었는데 단 한명만 뽑았다.

그리고 그 한명이 내가 되지 못했다.

 

처음에 그 결과를 알았을떈 멍했다.. '이게 진짜일리 없어..'라는 마음으로 다시 보고 또 봤다.

그러다 화가났다. 3명 뽑는다고 했는데 왜 1명만 뽑은거지..

면접을 봤던 다른 나머지 사람들은 자격미달이었다는 건가... 억울했다.

그러다 현실을 순응하게 됐다... 눈물이 났다.. 

 

내가 전직시험에 지원한 걸 아는 유일한 동기에게 내 소식을 전했다.

원주에 오기 전엔 사실 우르르 다같이는 몰려다니며 친했지만 속깊은 이야기까진 많이 나누지 않았던 동기였다.

원주에 와서 그래도 유일한 여자 동기여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다른 사람 입을 통해 내 소식을 들으면 혹여 서운할까 미리 말을 했었고, 나의 결과를 말했다. 그랬더니 차로 10분 거리에 사는 그 동기가 우리집으로 와줬다. 녹차 프라푸치노를 들고 정말 고마웠다. 그런데 그 동기가 내게 위로해준다고 말해줬던 말들이 오히려 비수로 박힌것들이 많았다.

 

그 동기의 눈에는 내가 원하는 걸 쫒아 앞으로 향하는 이런 내가 무모한 아이고,  세상물정 모르는 것 처럼 보였을까

나도 모르는 내 미래를 그 동기가 현실은 이럴꺼야 하며 단정짓는 것들이 너무 내 마음에 비수로 꽂혔다.. 

그래서 그 동기에게 '나 위로 해주러 온거 맞어?'(염장지르러 온거야?)라고 물었고, 오해를 풀려고 그 동기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둘러댔다. 하지만 나는 그 날을 계기로 아마 그 동기에게 벽을 칠 것 같다.

 

그 동기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무 달랐다.

우린 다른 환경에 살아왔고, 그 동기가 추구하는 삶과 그 동기가 생각하는 회사원. 연애관, 결혼관, 모두 달랐다.....

나는 그 동기를 한 명의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고 싶었지만 그 동기에게 나는 회사 일원 중 무모한 일을 저지르는 한 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괜히 그 동기에게 나에대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이 후회됐다. 나를 제대로 봐줄 수 없는 오히려 나에 대한 많은 것을 말하면 '앤 왜 이러지?'하며 더 공감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꺠달았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삶과 꿈을 평가하는 건 솔직히 너무 오만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 동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마음이 쓰라렸다.. 그냥 그 동기는 회사생활을 하는 동료로 내게 앞으로 남게 될 것 같다.

 

가끔씩 시련을 주는 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위한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도 한다.

나는 내 시련을 통해 진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알게됐다.

아니 이미 알고 살아왔는데, 모른척 하며 덮어왔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안락한 삶이 싫다. 사실 안락하지도 않지만,, 그냥 돈버는 기계로 살아가는 내 자신이 싫다.

나는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결과적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그래서 그 돈으로 부모님 빚을 갚아주고 싶다.

외삼촌이 돌아가시지 전에 부모님이 외삼촌에게 빚진 돈을 꼭 갚아드리고 싶다

그런데 지금 현재의 나로서는 그럴 여력이 전혀 없다.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내가 실천해야 한다. 가능성이 0.0001%라도 나는 해야한다.

 

PD가 되서 경력을 쌓아서 프로그램을 하나 빵 터트리고, 타사로 스카웃되어 큰돈을 손에 쥐고 싶었다. 그게 내가 노력해서 할 수 있는 로또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로또로 가는 내 꿈이 와르르 무너졌다. 하지만 다시 바닥에 왔으니 다시 또 올라가면 되겠지, 근데 서른이라는 나이가 나를 짓누른다. 아직 어리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더는 어리진 않은 나이다. 근데 또 그 서른이라는 나이도 절반보다 덜 남았다. 친구들이 차차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제자리다. 누굴 좋아하는 마음도 없고, 좋아해보려는 마음도 다 귀찮다....

 

나는 세상에서 우리 가족을 가장 사랑한다. 그 가족이 없어진 세상을 상상하는 지금도 눈에 눈물이 고인다.

너무 사랑하는데 또 가끔은 미울때도 있다. 가족을 생각하면 나만 생각하며 살아갈 수 없다.

나는 언제라도 무너질 지 모르는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하지만 내게 모아둔 돈이라고는 현재 사는 월세방 보증금 5백만원과 통장에 있는 적금 2백만원. 주택청약 270만원뿐이다. 가용할 수 있는 돈은 달랑 2백만원뿐.

더이상 대출도 어렵다. 아니.. 더이상 가족을 위해 대출을 받고 싶지 않다..... 지금도 숨이 턱까지 찼다... 더는 나도 너무 벅차고 힘들다....나는 입사후 3년간 부모님의 사업을 위해 월급을 전부 드렸고, 용돈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신용대출도 5천만원 해드렸고, 그동안 내가 대학을 다니며 빚진 학자금도 이제 약 3천만원이 남아있다.

나는 입사 6년차지만 한 달 한달 살아가기 바쁘다. 돈을 모은다는 건 사치다.

 

부모님이 매달 2천만원씩 이자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드렸던 돈이 정말 필요했던 돈이지만 어쩌면 밑빠진 독에 물을 부었던걸 아닐까하는 원망도 들었다.

왜 나까지 취직하고 아무것도 해본것 없이 빚에 쫓기며 살아가게 했을까 원망했다.

하지만 나는 나와 같이 입사한 동기나 후배들의 삶을 내 삶과 비교하지만 않고 그냥 지금 다니는 회사만 다니면

돈버는 기계가 된다면 10년 정도 뒤 쯤엔 빚없이 전세로 살만한 집에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결혼은 아마 못 할 것 같다. 딱히 이 사람 아니면 죽어도 못살아 할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내 처지에 결혼은 정말 사치다. 내 처지를 이해해줄 남자를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줄 남자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이다.

왜냐면 내가 남자여도 지금의 날것의 나를 받아들일 수 없다.  어느 누구도 깊게 담아지질 않는다..

나는 내 자신도 오롯하게 담아본 적도 담을수도 없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10년 전 부모님이 처음 새 사업을 시작했을떄 외가 식구들에게 도움으로 구사일생 살아났다.

그리고 5년전 내가 취직했을떄 또 일시적으로 살아나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 그냥 어차피 무너져 내릴 모래성이었다면,,

지난 내 5년이 너무 속상하다... 원망하지 않고 가엽게 부모님을 여기려고 해도... 너무너무 가슴속에서 울분이 터진다..

처음에 내 마음은 이러지 않았다. 25살 어린 나는 입사하자 마자 신용대출 해드리고 엄마아빠에게 힘이 되어드린다는게 너무 뿌듯하고 기뻤다. 내가 해준 돈이 부모님을 살리고, 또 이 기나긴 유리밭길의 끝이라고 여겼다. 모든 것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희망 1~2년이면 다 끝날 거라는 희망. 하지만 매달 2천만원의 이자가 나가고 있고, 어마어마한 빚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떄.. 나는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임기응변을 위해 내 돈이 사용되어졌고, 나도 빚쟁이가 됐다. 나라도 편히 살게 해줄수는 없었을까. 왜.왜.왜. 나까지... 나까지.. 아니 나에게 이런 시련을 준걸까...

2009년부터 시작된 빚의 지옥은 2019년까지 계속되고 있다. 전세금이 나가면 그 해 겨울을 버티고, 세입자가 방을 빼달라고 하면 또 바들바들 떠는 시간들. 차라리 모든 부동산을 정리하려고해도 빈껍데기 매물들이라.. 전세금이나 매매값이 삐까삐가해 남는 돈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그것이 부모님의 현실이다...거기에 오빠는 부모님 사업을 돕고 있다.

오빠는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다... 부모님의 사업이 망하면 유일하게 직장은 가진 나는 모른척 할 수 없다.

 

가끔.. 내가 신용대출 받아드렸던 돈, 5천만원과 3년간의 내 월급 1억이.. 부모님에게 헛된 희망을 줬던 것은 아닐까 싶다.

진작에 끝났어야 했는데... 진작에 매 맞고 다시 땅짚고 일어났어야 하는건데.. 계속 위태위태하게 서서 언제 넘어질지를 겸허히 기다리는 것 같다... 이 것이 내 탓일까.. 나 까짓게 뭐라고 기깟해야 월급쟁이주제에... 내 모든걸 가족에게 줬던 것이 독이 됐던 것은 아닐까... 5년전이라면 부모님이 다른 곳에 취직하거나 돈을 벌기에 좀 더 나은 나이이지 않았을까..

 

내가 가족을 원망하지 않는 방법은 빚의 늪에서 모두를 구하는 것이다.

큰 돈을 한번에 벌 수 있는 방법은 로또뿐이다.

큰 돈을 한번에 벌 수 있는 방법은 PD가 되는 것이었다. PD 가 되는 것은 내가 해야하는일이자 또 하고 싶은 일이라 너무 간절히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꿈에게 저만치 멀어져 땅으로 떨어졌다. 괜찮을거야, 다시 글을 써보자.

극본 공모가 남았어. 극본 공모 당첨금 그걸로 또 올 겨울을 버텨보자.

독하게 마음을 또 먹어본다. 그리고 또 내가 재능은 있는 걸까 또 자신감을 잃어간다.

내 삶이 다큐고, 내 삶이 드라마다... 돈에 쫓고 쫓기는 삶

나만 생각하고 사는 삶이 사치인 삶. 일기를 마치고 나는 오늘 또 극본을 적어볼 것이다. 다시 또 일어설 것이다.

또 나는 오늘 로또를 살것이다. ... 돈 벼락을 맞았으면 좋겠다.

부모님 빚을 다 갚아드리고 싶다... 좀 더 젊으실때 인생을 즐기게 해드리고 싶다.

빚에서 구해드리고 싶은데..내가 지금 더 받을 수 있는 대출은 천 오백만원. 그것은 한달 이자도 안되는 돈이지만 내게는 무척 큰 돈이다.. 내가 해드릴수 있는건 임시방편으로 나를 곪아가며 돕는 것이다...

 

 

 

 

 

posted by 파란수선화
2019. 7. 16. 17:35

지난 12일 나는 시험을 봤다.

PD가 되는 시험. 그리고 18일날 면접이 예정되어있지만, 아직 모른다. 내가 면접을 보러갈 사람인지 아닌지

오늘 인사부에 연락해보니 채점중이라고 아무리 늦어도 내일 오전중엔 통보가 될거라고 연락을 받았다.

 

갈곳을 잃은 나는 혼란스럽다. 핸드폰 진동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컹 내려앉는다.

인사부에서 오는 문자일까봐. 가슴이 쪼여졌다가 택배 문자라는 것을 알고난 뒤에야 내 가슴은 다시 펴진다.

 

학창 시절 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에 봉착했었다.

그 시기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알바를 많이 뛰어도 장학금 받는게 더 큰 돈을 버는 것이였고, 내 미래를 위해서도 이로운 일이었다.

지금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비슷한 어려움, 위기에 봉착해있다.

하지만 나는 또 무력하다. 하지만 이번엔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이 그 위기를 뚫고 나갈 힘이 되어줄 것도 같다.

그래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세상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참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을 쓰는 건, 내가 글을 쓰는 걸 좋아해서 이기도 하고, 내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 글을 쓰는 것이다. 내가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독자의 입장에서 또 읽어보고, 그렇게 유민이랑 지호가 탄생했던 것 처럼. 또 그렇게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 넣어 보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쓴 글이 그 글 속에 있는 캐릭터들이 살아서 영상으로 실존하게 된다면 그 큰 감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상상하는 것이 내 요즘 유일한 낙이다.

 

PD가 되고 싶다.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그냥 직장인으로 회사의 부품으로 살아가는게 싫다.

글을 쓰고, 또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누군가의 삶의 변화시키고 싶다. 그리고 나아가 사회를 조금이라도 깨끗하고 따뜻하게 만들고 싶다. 그러면 굳이 돈을 좇지 않아도 돈이 따를 것 같다.

 

김 감독에서 김 기자 그리고 다시 또 김 PD를 꿈꾸는 오늘. 남은 내 인생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몰입하고 또 돈을 받는 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고, 기적이다.

그 기적이 내게 일어나면 좋겠다.. 정말 간절히.. 내일 오전 결과발표 전까지 나는 피가 마를 예정이다...

 

posted by 파란수선화
2019. 6. 3. 11:24

#30살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뭐든 할 수 있고, 사고 싶은 것은 뭐든 살 수 있는 나이.

 

20살때 나의 용돈은 한 달에 20만원이였다. 오늘 그런데 쇼핑으로 총 약 50만원을 썼다.

30만원정도 하는 신발을 샀고, 옷을 20만원 정도 샀다.

 

이렇게 지른 것은 드물긴한데 마음 속으로 살까 말까 했던 것들을 월요병 퇴치를 위한 마음이었을까

그냥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그 옷이 이쁘고 그 신발이 이뻤기 때문일까

나는 쇼핑을 했다. 질렀다.

 

20살의 두 달 용돈이 아주 짧은 순간에 사라졌다.

 

20살때의 나는 미국땅을 걸어 보는게 꿈이었고, 유럽여행이 꿈이었다.

 

30살의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

 

뭐든 사고 뭐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나를 이렇게 해주는 것은 '돈'이다.

돈에게 먹히면 안좋겠지만,

돈을 어느정도 갖고 있으면 그 돈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들을 사줄수가 있다.

그리고 해주고 싶은 것도 해줄 수가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소소한 행복, 소소한 기쁨들은 사라져간다.

 

25살 처음 직장을 다니면서도 한달에 40만원 용돈을 받았는데

오늘 이렇게 비싼 신발을 산건 처음이다..ㄷㄷㄷ

10만원대도 비싸다고 하면서 샀는데 30만원짜리 신발이라니....

너무 이뻐서 자꾸 아른거리던 신발이니, 정말 소중히 잘 신어야겠다 헤헿>_<

 

오늘은 동기언니랑 맛난 카페에서 브런취를 먹을거다!!!!

posted by 파란수선화
2019. 5. 31. 21:42 나와 타인의 이야기

내 삶의 기쁨이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누군가와 나 사이의 관계를 말할떄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고가 중요한게 아니다.

결국엔 둘 사이의 마음은 정확히 같게 된다.

 

내가 누군가를 상처 줬다고 후회하고 마음 아파하지 마라.

그 상처가 똑같이 부메랑처럼 너에게도 돌아온다.

 

남녀는 서로 자기짝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왜? 그럴까? 더 행복해지려고 하는걸까?

아니면 생리적인 욕구를 풀기 위해서 일까?

내 자신이 왜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남들이 다 연애하고 남들이 다 결혼하니까 조급한 마음에 나도 누구하나 옆에 둬야겠다라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나왔던건 아닐까.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싶지도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식으로만 그 사람을

딱 그 만큼만 대했던게 아닐까. '나 너 좋아해' '너도 나 좋아하지' '우리 사귈래'

누군가와의 관계를 변화 시키는데는 이렇게 세 마디만 주고 받으면 되는데...

 

생각이 너무 많다. 계산이 너무 많다. 손해를 보기 싫어한다. 상처받기가 싫다.

그렇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지 않을까. 아니 그렇다면 사랑을 할 수 없지 않을까.

20살에 <오만과 편견>영화를 참 감명깊게 봤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결혼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것일뿐.

사랑이 이뤄낸 결과물은 아닌걸까.

누군가와 매일 함께 잠들고 싶을만큼 좋아할 수는 있을까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봤을까...

 

하루 이틀, 한달 이하를 만난 남자친구들을 빼고, 한 달 이상 만났던 남자들은 총

20살 KH / 21살 JW/ 23살 SW/ 27살 JG 4명 이였다. 

그리고 20살, 21살, 23살, 27살, 28살 살면서 다섯명의 남자들과 키스를 해봤다.

하지만 그 중에 그 사람과 자고 싶다라고 느낌은 줬던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잠자리를 갖지 않았다.

좋아하고 같이 있으면 행복했다. 하지만 꼭 잠자리를 함께 해야만 사랑이 완성되는 걸까.

 

직장인이 되고 만났던 남자는 3달이상을 못 사겼다. 학생때보다 잠자리를 요구하는 시간이 앞당겨졌다.

하지만 그 사람과 내가 헤어진게 잠자리 때문만은 아니긴 했지만, 어느정도를 차지하긴 했던것 같다.

 

23살에 만났던 친구와 나의 인연은 참 질겼다. 하지만 2012년의 인연이 2019년 종결했다.

그애와 나의 마음은 2012년엔 맞았지만 2019년엔 틀렸다.

가장 오랜 시간 그리웠고, 후회됐고 미련이 남았던 연애였지만, 그애에게 실망하고 난 뒤

그애를 향했던 마음은 와르르 무너졌다.

 

남자들은 날 쉽게 좋아한다. 소개팅에 나가면 다 나를 좋아한다.

그래서 난 오만해졌던것 같다. 그리고 그들에게 편견을 가졌다.

나에대해서 뭘 알고 날 좋아하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들의 눈에만 보이는 나를 좋아하는 것일까

나에게 있어 소개팅은 연극인데. 그 연극을 그 사람과 만날때는 항상 해야 하는 걸까.

 

 

 

posted by 파란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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