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기쁨이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누군가와 나 사이의 관계를 말할떄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고가 중요한게 아니다.
결국엔 둘 사이의 마음은 정확히 같게 된다.
내가 누군가를 상처 줬다고 후회하고 마음 아파하지 마라.
그 상처가 똑같이 부메랑처럼 너에게도 돌아온다.
남녀는 서로 자기짝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왜? 그럴까? 더 행복해지려고 하는걸까?
아니면 생리적인 욕구를 풀기 위해서 일까?
내 자신이 왜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남들이 다 연애하고 남들이 다 결혼하니까 조급한 마음에 나도 누구하나 옆에 둬야겠다라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나왔던건 아닐까.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싶지도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식으로만 그 사람을
딱 그 만큼만 대했던게 아닐까. '나 너 좋아해' '너도 나 좋아하지' '우리 사귈래'
누군가와의 관계를 변화 시키는데는 이렇게 세 마디만 주고 받으면 되는데...
생각이 너무 많다. 계산이 너무 많다. 손해를 보기 싫어한다. 상처받기가 싫다.
그렇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지 않을까. 아니 그렇다면 사랑을 할 수 없지 않을까.
20살에 <오만과 편견>영화를 참 감명깊게 봤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결혼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것일뿐.
사랑이 이뤄낸 결과물은 아닌걸까.
누군가와 매일 함께 잠들고 싶을만큼 좋아할 수는 있을까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봤을까...
하루 이틀, 한달 이하를 만난 남자친구들을 빼고, 한 달 이상 만났던 남자들은 총
20살 KH / 21살 JW/ 23살 SW/ 27살 JG 4명 이였다.
그리고 20살, 21살, 23살, 27살, 28살 살면서 다섯명의 남자들과 키스를 해봤다.
하지만 그 중에 그 사람과 자고 싶다라고 느낌은 줬던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잠자리를 갖지 않았다.
좋아하고 같이 있으면 행복했다. 하지만 꼭 잠자리를 함께 해야만 사랑이 완성되는 걸까.
직장인이 되고 만났던 남자는 3달이상을 못 사겼다. 학생때보다 잠자리를 요구하는 시간이 앞당겨졌다.
하지만 그 사람과 내가 헤어진게 잠자리 때문만은 아니긴 했지만, 어느정도를 차지하긴 했던것 같다.
23살에 만났던 친구와 나의 인연은 참 질겼다. 하지만 2012년의 인연이 2019년 종결했다.
그애와 나의 마음은 2012년엔 맞았지만 2019년엔 틀렸다.
가장 오랜 시간 그리웠고, 후회됐고 미련이 남았던 연애였지만, 그애에게 실망하고 난 뒤
그애를 향했던 마음은 와르르 무너졌다.
남자들은 날 쉽게 좋아한다. 소개팅에 나가면 다 나를 좋아한다.
그래서 난 오만해졌던것 같다. 그리고 그들에게 편견을 가졌다.
나에대해서 뭘 알고 날 좋아하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들의 눈에만 보이는 나를 좋아하는 것일까
나에게 있어 소개팅은 연극인데. 그 연극을 그 사람과 만날때는 항상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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